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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0301_간사 후원 모금제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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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한국CCC는 1982년부터 보다 나은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 선교후원제도를 현실화하기로 결정하고, 전임 간사 전원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모금하기로 했다. 이로써 봉급을 받아 생활하던 간사들의 생활비가 국제CCC 규정에 따라 후원자를 모금하여 생활하는 제도로 전환되었다.

미국에서는 1951년 국제CCC 설립과 동시에 선교후원제도를 도입했지만, 한국CCC는 처음에는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김준곤 목사는 서울 충무로 자택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국제본부의 지원과 본인의 모금으로 간사들의 생활비를 지급해왔다.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는 후원 모금이 거의 불가능했다.

1982년 선교후원제도를 도입하기까지 국제본부의 지원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주로 김준곤 목사가 미국CCC의 양해를 얻어 직접 미국에 가서 후원을 개발했으며, 국내에서도 졸업생들(나사렛형제들)이 배출되면서 사역에 필요한 일부 재정을 헌금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후원 모금을 통해 재단을 설립하고, 그 운영을 통해 간사들의 생활비를 지급하게 되었다.

1982년에 선교후원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GCTC가 1981년 9월에 개설되면서 CCC의 철학과 정책이 더욱 선명해졌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재단 수익금에 의한 간사 급여 지급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는 크리스천 사업가였으나 전임 사역자로 헌신하였고, 사역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이 선교후원제도를 통해 하나님이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이는 하나님 앞에 헌신한 사명감 있는 동역자를 얻는 데 격려가 되었다. 현재도 CCC의 재정 정책 중 하나로 각 간사가 생활비와 사역비를 헌금해줄 동역자 개발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적절한 재정 후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각 간사를 CCC 사역으로 부르신 것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CCC와 간사들은 하나님께 대한 기대와 더불어 협력 선교를 통한 축복, 나아가 사역 확산을 꿈꾸며 한국 교회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단계적 시행으로 첫해인 1982년에는 35%가 후원 목표였다. 의혹의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으나 한국 교회에는 신선한 충격이 되었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조심스럽게 주시하는 선교단체들도 있었다.

이듬해의 목표는 50%로 상향 조정되었고, 1984년에는 65%, 1985년에는 80%로 설정되었으며, 1984년 이후 지원한 신임 간사들은 100% 후원으로 선교후원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1982년 이전에는 한국 내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다른 선교단체가 이러한 선교후원을 시도한 바 있지만, 100여 명의 직원이 공적으로 한국 교회에 알리고 선교후원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한국CCC가 처음이었다. 한국 교회의 수용은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다른 선교단체들에게도 큰 격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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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사도행전 1:2)
우리가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1서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