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월 1일 0시,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김준곤 목사는 기독교방송(CBS)을 통해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민족복음화운동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로써 민족복음화운동은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방송을 통해 ‘이 민족을 주님께 드리려는 우리들의 영광의 행진’이 선포되었고,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주님께 맡기는 운동은 여러 차례 사랑방요원 강습회에서 산파역을 감당하며 1960년대를 마무리하고 이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복음 전파에 대한 불타는 열망은 그의 메시지 속에서 활활 타올랐고,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은 그 열정에 감화되어 민족복음화운동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969년의 마지막을 보내며 1970년대를 맞는 전환기에 수원에서 민족복음화의 활화산이 터지게 되었다. 서울 농대 기숙사에서 진행된 민족복음화를 위한 강습회에는 전국에서 지명 차출된 젊은 사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민족복음화는 주님의 뜻이며, 주님이 하시면 가능하다는 믿음을 다짐하였다. 이들은 일사각오로 헌신할 것을 결의하며 첫 번째 폭탄을 터뜨렸다.
이때 부르짖은 3중 헌신은 주님에 대한 헌신, 민족에 대한 헌신, 형제들에 대한 헌신으로, 이는 나사렛형제들의 헌신이었다. 이 헌신이 원동력이 되어, 전국 5만 9천여 자연 부락에 사랑방 성서학교를 만들고, 전군, 정치, 교육, 경제 등 각계 인사에게 복음을 전하여 신자로 변화시키며, 전교인 전도 훈련을 받게 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농촌과 어촌, 각계각층에 복음을 전하여 이 민족을 입체적으로 복음화할 것을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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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복음화의 선언
방금 울린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60년대가 70년대로 넘어 오는 이 엄숙한 순간에 나는 나의 사랑하는 한국교회와 함께 우리들의 지상 과제인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비상한 헌신과 결심을 하고 싶습니다. 200만 기독교도가 총동원되어 전도로 민족의 혁명을 이룩하는 일보다 빠르고 좋은 남북통일의 길과 민족이 잘 사는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격변과 혁명의 열풍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기증이 날만큼 충격적이고 무서운 속도로 자연 과학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류는 5만 년 과거사를 하루로 축소시킬 수가 있습니다. 생물 공장이 생긴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격변과 위협과 도전을 받지 않는 영역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모든 터전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날마다 정치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사회·문화·정신 구조, 사고방식, 생활 방식, 전통과 권위도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학설마다 뒤집혀지고 있고 윤리도 종교도 모두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종 변화의 방향은 발광적이고 파괴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경에 근거하여 한 가지를 예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미치고 자살하는 사람의 수와 알코올 중독자의 수와 마약 중독자의 수가 날로 늘어날 것입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의 수와 범죄자의 수와 이혼하는 사람의 수도 격증할 것입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악의 지능지수도 높아갑니다. 더 많이 음란하고, 더 세련되게 속이고, 더 많이 미워하고, 더 많이 무기력하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해질 것이며, 보다 급격히 비인격화와 비도덕화와 비신앙화의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70년대에 민족의 예수 혁명을 못하면 그 심판을 역사적으로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심어 주지 못하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히피와 섹스화되고, 광포하고 파괴적인 선동을 받게 되며, 잡스러운 신흥 종교들이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성적 퇴폐 현상이 나타납니다. 섹스는 대용품의 신이고 얼굴 없는 밤의 신입니다. 그 품에서 인간들은 죄책도 죽음도 허무도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싶고 시간의 억압에서도 탈출하고 싶은 것입니다. 섹스의 영은 전쟁과 살인의 영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사디즘(sadism)이나 매조키즘(masochism)도 그 근원은 영적인 병입니다. 누구에겐가 무엇에겐가 송두리째 소유되고 싶고, 또한 소유하고 싶은 충동은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영적 구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신앙과 그것에 미치고 취하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절대신앙의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일급 지성인인 미시마 유키오는 광적이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할복자살을 했습니다.
한편 70년대에는 풍요한 나라에서는 섹스 이후의 25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닌 소위 섹스의 신, 허무의 신마저 죽인 제3세대가 등장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주변 국가를 살펴보면 중공이나 일본에도 가짜 절대신앙은 부흥되고 있습니다. 7억 인구의 중공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 마오쩌둥이 절대자요 신입니다. 그것을 절대로 믿고 그것에게 절대헌신을 하고 그것을 위해 절대적 훈련을 받으며 그것을 위해 절대적 행동을 강요받습니다.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으로 거듭나고 그것을 위해 죽기까지 강요를 받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기독교의 해적단입니다. 예수의 자리에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을 앉혀 놓은 것뿐입니다.
일본 창가학회는 700만의 회원을 가지고 80년대까지 세계 제3문화 창조를 선언하는 일본산 신흥 종교입니다. 그것도 기독교의 해적단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창가학회는 700년 전에 죽은 일본의 중 니치렌을 믿는 종교인데 그들의 주장은 기독교와 같습니다. 니치렌만이 구주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창가학회가 죽은 니치렌으로 일본을 혁명하려고 하고 마오쩌둥이 죽은 마르크스의 망령으로 중국을 혁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를 통해 우리 민족을 부활시키고 근본 혁명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예수는 사상 최대의 혁명의 능력입니다. 혁명의 창조적 소수가 뭉쳐 전략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취하고 미쳤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불덩어리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목숨을 내버린 사람처럼 무섭고 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들은 보잘 것 없는 소수였습니다. 예수의 열은 그 어떤 것보다 뜨겁고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합니다.
1만 2천여 개의 한국 교회에 전도의 불을 지르는 사람, 그 열병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불러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10대의 소년들이 일어나서 어른들의 잠을 깨워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청년들에게, 한국의 학생들에게 저는 호소하고 싶습니다. 청년들은 그 민족의 심장이요, 소망이요, 비전이요, 감격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의 신앙은 너무도 회의적이고 부정적이고 창백합니다. 그들을 울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감격할 줄 모릅니다. 노인들은 울릴 수가 있어도 그들은 지나치게 공리적이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감격시킬 줄도 모르고 우리들을 울리지도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국민의 55퍼센트가 농촌에 살고 있습니다. 이 농촌에는 5만 9천여 개의 자연 부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연 부락들은 교회 부재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은 6·25전에는 밤마다 공산당이 찾아가서 선동해서 석유를 짊어지고 지서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가다가 죽기조차 했습니다. 그들은 흙 속에서 가난을 먹고 씨를 뿌리고 지게로 짐을 나르는 노동자이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서 기독교 한국이 성립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농촌은 복음의 처녀지요, 전도의 황금 어장이며 생명의 옥토입니다.
5만 9천여 개의 자연 부락은 1,357개 면 안에 산재해 있습니다. 자원하는 전도 청년, 학생 십자군 수천 명이 훈련을 받아서 옛날 탁발 수도승들처럼, 금광이나 산삼을 찾아 일생을 산으로 다니는 사람들처럼, 무전 여행자처럼, 혹은 보부상처럼, 마을마다 그들이 찾아가서 사랑방에서 논두렁에서 두 세 사람이 모여 예배하는 교회 이전의 원색의 교회가 10만 개만 생기면 한국 농촌은 복음화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의 사도행전을 다시 써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그런 부흥과 기적이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기록은 어느 성경에도 없습니다. 전도처럼 바르고 빠른 통일의 길, 근대화의 길은 없습니다. 흔히 기독교 안에서 사회 구조를 먼저 복음화 하느냐 개인 전도를 먼저 할 것이냐를 논쟁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선교사는 창녀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를 하며 예수를 심어 줍니다. 이 창녀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10명 가운데 8명까지는 제 발로 걸어 나가서 아름다운 재활과 재생의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예수만 전해 주면 제 발로 걷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심어야 합니다.
한국에 예수의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아시아로 왔습니다. 아시아 시대를 맞이하는 전도의 중심은 한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국은 사상 전례가 없는 기독교의 상징적인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노력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을 위해 누가 나설 것입니까? 한국의 복음화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하겠습니다. 나 이외에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울 사람이 없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각자가 부름에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의 복음화가 앞으로 기어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힘쓸 것을 결심하고 선언합니다.
1970년대가 가기 전에 한국의 정치와 한국의 경제와 한국의 교육과 한국의 문화가 입체적으로 복음화하기 위해서 먼저 농촌 마을에 수천 명의 학생 전도대를 훈련시켜 파송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약 6,000개의 초등학교와, 1만 6천 개의 중학교와, 890개의 고등학교와, 130개의 대학도 복음의 황금 어장입니다. 추수할 곡식이 익어 있습니다. 직장이나 기관에서 기도하는 그룹을 수만 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의 1970년대는 그리스도의 시대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북통일도 예수의 혁명으로 이룩하도록 우리는 이 원단에 엄숙하게 결심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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