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CCC는 1958년, 당시 국민 1인당 GNP가 78달러였던 시기에 김준곤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국 전쟁 중 김 목사는 아버지와 아내를 잃고 2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광주 숭일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 미국 풀러신학교에 유학 중, 그는 록키산맥의 포레스트 홈에서 간증할 기회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빌 브라이트 박사와 동역자가 되기로 하여 한국CCC가 최초의 해외국가 CCC로 태어났다.
CCC 운동은 광주를 시작으로 서울 등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고, 1960년에는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전주 등에서 캠퍼스 전도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캠퍼스에서 활동하는 유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CCC 회원들이었다.
4·19 혁명 이후, 독재 정치가 끝나고 하루에 2천 건 이상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5·16 군사정변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CCC는 시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캠퍼스 전도에 집중하기로 결심하였다. 또한,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금식하고 철야 기도를 통해 힘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