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지구는 1972년 엑스플로74를 앞두고 원주 근교의 몇몇 교회에서 LTC를 실시한 것이 계기가 되어 태동하게 되었다. 1973년 3월 5일, 김성주 간사가 초대 간사로 부임하였고, 1973년 5월 26일에는 김준곤 목사의 메시지와 이동범 선생의 독창으로 원주지구의 창립예배가 드려졌다. 1974년 9월 1일에는 임만호 간사가 파송되어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엑스플로74 이후 한국CCC는 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수개월의 공백이 생기는 아픔을 겪었다. 김홍섭, 김경란, 황연하 간사가 사역하였으나, 1975년 8월 28일에는 결국 원주지구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부터 원주의 사도행전은 2년 반 동안 원색적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폐지 소식에 울던 형제들, 추운 겨울 날 석유 한 되 값이 없어 난로를 피우지 못하고 떨던 일, 무료로 회관을 사용하던 중 비워달라는 주인의 통보에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일 등이 있었다. 이들은 즉시 작정헌금을 하고 밤중에 원주 시내를 다니며 인동의 판잣집 다섯 평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곳은 15명 이상 앉으면 마루가 꺼질까 봐 몹시 불안한 낡은 창고 건물이었지만, 사랑과 기도, 헌신이 담긴 둥우리였다.
김경란 간사는 등대지기처럼 원주지구를 사수하며 폐지된 지구를 책임지고 고통 속에서도 특별한 소명으로 지구 재생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더욱이 이단이 극성하여 이호선 학생을 제외한 모두가 이탈해버린 사건은 충격과 절망을 안겼다.
1977년 심천 천막수련회에는 35명의 대학생이 참석하였고, 당시 춘천의 이상규 간사와 후송병원에 복무 중이었던 이무석, 오원용 나사렛형제들의 기도와 재정 후원, 지체들의 사랑과 헌신이 기초가 되어 원주지구는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이러한 헌신과 공동체의 노력은 원주지구 사역의 재건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지역 내 복음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