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대학생 선교와 민족복음화 운동에 헌신한 김준곤 목사가 2009년 9월 29일 오전 11시 11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85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이자 이사장이며 성시화운동 총재인 김준곤 목사는 민족의 수난과 개인, 가족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족복음화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왔다. 1962년 2월, 친구인 박요한 목사의 누님이 운영하는 삼각산 민족기도원에서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도 민족을 위해 기도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25년 3월 28일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에서 태어난 김준곤 목사는 일곱 살 때 낙도의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에게 처음 복음을 전해 들었다. 무안농업실수학교(현 무안중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만주봉천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일제강제노역으로 제대로 다니지 못한 김준곤 목사는 만주의 김인석 목사 집에 피신해 있으면서 새벽기도와 성경 암송에 힘썼다. 1946년 조선신학교에 입학한 후, 미국 유학파였던 김재준, 송창근 교수의 자유주의신학 논란으로 인해 고려신학교로 옮겨 한 학기를 공부하고 1948년 9월 장로회신학교 제1회로 졸업하였다.
1957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한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고, 1958년 11월 한국CCC를 창설하였다.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김준곤 목사는 개인전도 사역을 통해 제자 양육에 나서겠다고 다짐하고 고려대, 서울대,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김인중, 하용조, 홍정길 목사 등 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1990년대 초에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초대 이사장을 맡아 나눔과 헌신의 삶을 살아왔으며, 각막을 기증하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2005년에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서를 발표하며,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민족복음화와 10만 명 선교사 파송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쓰임 받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김준곤 목사의 장례식은 2009년 10월 2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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